책소개
양쿠이는 타이완의 루쉰으로 불리는 라이허보다는 좀 뒤에 활동한,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였다. 본 선집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양쿠이의 1934년작 <신문 배달 소년>은 당시 일본 도쿄에서 나오던 잡지 ≪문학평론≫의 현상 공모에서 입상한 작품이다. 1930년대 일본에는 문학 운동이 탄압을 받아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NAPF)와 같은 중심 조직이 와해되어 버리자, 조선이나 타이완의 저항 작가들을 영입해 명맥을 이어 가려 했던 좌익계 잡지들이 있었는데, ≪문학평론≫은 그중 하나다. 당시 조선에서도 일본 ‘중앙 문단’으로의 진출을 꿈꾸던 작가들이 있었다. <아귀도>를 쓴 장혁주나 <빛 속으로>를 쓴 김사량, 혹은 <암모니아 공장>을 쓴 이북명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나 등단의 배경 면에서 양쿠이와 아주 유사하다. 그 후 장혁주는 친일 작가로 변절했고, 김사량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으며, 이북명은 38선을 넘어 월북하는 등, 그들의 인생 경로는 그 후로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져 버리게 되지만.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에 비해 1895년에 식민지가 된 타이완은 일제에 대한 굴종의 시기가 상대적으로 좀 일찍 찾아온다. 식민지 시대 타이완 작가들 중에는 친일적 성향의 작가들이 많았고, 좌익적이고 항일적인 양쿠이 같은 저항 작가는 매우 드물었다. 대표작 <신문 배달 소년>은 바로 그런 양쿠이의 스타일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인데, 도쿄에 간 타이완 유학생이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지만, 계약 사기를 당해 돈을 떼인 후 좌익 사상을 가진 일본 학생을 만나, 함께 투쟁의 길로 나서게 된다는 내용이다. 전개 면에서 다소 비약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아시아 ‘약자’ 간의 국경을 넘어선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자 연구 자료다. <신문 배달 소년>과 더불어 본 선집에 수록된 <엄마 거위 시집가네>, <맹아>, <고구마를 심는다> 등의 단편소설은 모두 일제 강점기 타이완 사회를 진솔하게 반영한 작품들이다.
양쿠이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로도 농민운동과 신문화 운동을 했으며, ≪타이완신문학≫ 등의 잡지를 창간하기도 한다. ‘작가 양쿠이’에 비해 ‘운동가 양쿠이’는 덜 알려진 셈인데, 이 부분을 보충하고 당시 타이완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 <일본 식민 통치를 받고 자란 아이>, <양쿠이의 생애와 저작에 관한 연표> 등의 자료들을 본 선집에 넣었다. 특히 위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의 인터뷰 진행을 맡은 다이궈후이(戴國煇)와 와카바야시 마사히로(若林正丈)는 당대 일본의 타이완 연구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다. 이들을 포함한 일군의 일본 연구자들은 국민당 독재 시절 타이완 내에서 연구가 자유롭지 못했던 때부터 타이완 연구를 시작해서, 나중에 타이완 학계에 일정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0자평
타이완의 대표적 항일 작가 양쿠이의 소설선이다. 대표작 ‘신문 배달 소년’과 ‘엄마 거위 시집가네’, ‘맹아’, ‘고구마를 심는다’ 등 1930~1940년대 일제 강점기의 타이완 사회를 그린 작품을 묶어 펴냈다.
추가로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 – 일본, 타이완, 중국 대륙에 대한 양쿠이와의 인터뷰’, ‘일본 식민 통치를 받고 자란 아이’, ‘양쿠이의 생애와 저작에 관한 연표’ 등 양쿠이 인터뷰 글, 양쿠이가 간략하게 자신의 이력을 밝힌 글, 양쿠이 연표를 실었다.
지은이
본명은 양구이(楊貴)이고 1905년 타이난(臺南)에서 출생했다. 필명으로는 양쿠이(楊逵), 양졘원(楊建文) 등이 있다. 어린 시절 쟈오바녠에서 일어난 항일운동과 그에 대한 학살 사건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을 공부했고, 이때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27년에는 타이완으로 돌아와 농민운동에 종사했다. 대표작인 <신문 배달 소년>이 일본 도쿄에서 발행되는 ≪문학평론≫의 공모에서 2등상을 수상하면서, 타이완 문학이 일본 문단에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1935년에는 ≪타이완신문학≫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귀농해 수양농원(首陽農園)을 꾸려 가며 살았다. 일본이 패전하자 타이완 사회의 재건에 앞장서는 한편 문학 활동도 재개해 ≪타이완문학총간≫을 창간했다. 1949년에는 <화평 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국민당 정부로부터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옥 후에는 타이중(臺中)의 동해화원에서 칩거했다. 1985년 타이중에서 향년 81세로 영면했다. 작품집으로는 ≪신문 배달 소년≫, ≪엄마 거위 시집가네≫, ≪양두집(羊頭集)≫, ≪꺾이지 않는 장미≫ 등이 있다.
옮긴이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중국 현대문학 연구이다. 그동안 중국과 타이완의 현대문학.영화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으며, 번역서로는 <100년간의 중국문학>, <현대중국, 영화로 가다>,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베이징을 걷다>, <흰 코 너구리>, <빅토리아 클럽>, <미로의 정원>, <아시아의 고아> 등이 있다. 최근 연구 면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올드 상하이의 도시 기억과 한국인’, ‘동아시아의 문학적 전통과 루쉰’ 등이다.
차례
탈경계의 시대, 넓어진 시야로 읽는 양쿠이-≪양쿠이 소설선≫ 한국어판 서문
신문 배달 소년
엄마 거위 시집가네
맹아(萌芽)
고구마를 심는다(種地瓜)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일본, 타이완, 중국 대륙에 대한 양쿠이와의 인터뷰
일본 식민 통치를 받고 자란 아이(日本植民統治下的孩子)
양쿠이의 생애와 저작에 관한 연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게 바로 공존공영(共存共榮)입니다.”
종묘원 사장이 또 말했다. 대동아전쟁이 ‘공존공영’을 표방하고 나서니, 이 시골 사람까지도 이 원리를 습득한 것이었다.
“공존공영이요?”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래요, 장사를 순조롭게 할 수 있고 서로 만족스럽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장사를 순조롭게 할 수 있고 서로가 만족스럽다…. 그 말은 맞지만 그 뒤에선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해를 입는다.
≪공영 경제의 이념≫…나는 린원친 군의 저작이 또다시 떠올랐다.
린원친 군은 일찍이 영국 상인이 청조의 관리를 매수해 중국 대륙에서 아편 장사를 한 것을 지적했다…. 이것도 이들 장사꾼들의 눈에는 바로 ‘공존공영’이다. 가증스러운 공존공영! 지금 나도 이렇게 그중의 일각을 담당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떨리고 간담이 서늘하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남은 빚을 청산하고, 그를 피하기라도 하듯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수중에 남은 돈을 보면서 마음이 상당히 불안했다. 그 30원은 말하자면 번 것도 아니고, 손실을 면했다고 할까, 아니 엄마 거위를 시집보낸 대가였던 것이다….
―<엄마 거위 시집가네> 중에서